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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2-11 04:00 조회 237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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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 논설위원
# "자연도(紫燕島 지금의 영종도)는 그 산의 동쪽 한 섬에 날아다니는 제비가 많기 영향으로 그렇게 명명된 것이며 산에 의지해 관사를 지었는데, 경원정(慶源亭)이라 했고 그 곁에는 막집(幕屋) 수 십칸과 주민들의 초가집이 많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은 고려의 역사와 문물, 제도, 풍습 등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1123년 사신단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한 송(宋)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한 달 남짓 개경에 머물며 직접 보고, 듣고, 조사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지어 휘종(徽宗)에게 올린 것으로 모두 4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아마도 정책보고서일 것이다 릴플레이꽁머니 .
자연도는 해상교통이 발달했던 당시 수도 개경을 드나드는 길목에 있던 전략적 요충지이고 경원정은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누정(樓亭)이었다. 고려시대 인천지역은 수주(樹州), 경원군, 인주(仁州), 경원부 등으로 불렸고 지금의 부평 일대에 개성의 남방을 방어하기 위한 안남도호부가 설치됐다.
# 인주 이씨는 11대 문종에서 관련 내용 릴플레이 페이지선택 17대 인종대까지 7대, 80년에 걸쳐 왕의 외척으로 가히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렸다. 순종, 선종, 헌종, 숙종, 인종 다섯 왕의 외향, 문종과 순종, 선종, 예종, 인종비의 내향이었다. 순종, 선종, 인종 세 왕에게 인주는 왕의 외향인 동시에 왕비의 내향이었다. 즉 왕의 외가이자 왕비의 친정이라는 말이다. 10명의 왕비를 배출하고 궁중 안에 인주 이씨의 관련 내용 릴플레이황금성 피가 섞이지 않은 왕족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어떠했겠는가. 조선 후기 노론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당력을 쏟아부었던 두 가지 일 가운데 하나가 왕비를 배출하는 것, '국혼물실(國婚勿失)'이었을 정도로 외척은 권력의 또 다른 정점이었다.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는 말이 유래된 배경이다. 인종대 일어난 이자겸의 난은 인주 이씨의 몰락과 함께 문벌귀 관련 내용 웹 기반골드몽 족사회의 붕괴를 촉진하는 신호탄이었다.
인천지하철 1호선과 수인선의 환승역인 원인재(源仁齋)는 인주 이씨 중시조인 이허겸의 재실이다. 부평 이씨의 시조 이희목(李希穆)은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해 삼한공신에 책봉됐다.
# 당대 세계 최강제국 몽골의 침략 시기 강화도는 1232년부터 70년까지 39년간 고려의 수도였다. 관련 내용 오징어릴플레이 이른바 '강도(江都) 시대'다. 무신정권의 최고권력자 최우에 의해 단행된 천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어쨌든 고려는 이곳에서 절체절명의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지켜냈다. 수도 이전과 함께 왕족과 귀족, 관료, 백성들의 업무 및 거주시설, 방어시설 등이 건립됐으나 항복에 이은 환도 후 몽골의 요구에 따라 거의 대부분 파괴됐다.
현재 강화에는 왕릉 2기(홍릉, 석릉)와 왕비릉 2기(곤릉, 가릉), 궁지(宮址), 외성과 중성, 산성 등의 성(城), 팔만대장경 판각지인 선원사지, 삼별초 항쟁지 등 그 때의 흔적들이 여럿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고 있다.
# 대문호(大文豪) 이규보(1168~1241)는 무신정권과 몽골 침략시기를 살다 갔다. 개경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1219년 그는 탄핵을 받고 계양부사로 좌천됐다. 13개월 동안 재직한 그는 부임 때의 참담한 심정과 당시 3면이 물에 둘러싸인 계양지역의 풍광을 담은 시문 몇 편을 「동국이상국집」에 남겼다. 천도와 함께 강화로 들어간 이규보는 그곳에서 생을 마쳤으며 길상면에 묘가 있다.
이렇듯 인천과 고려의 인연은 깊다. 지금 남한 땅에서 그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강화다.건립을 위한 타당성 연구용역비 등 관련 예산이 얼마전 국회를 통과했다.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유적과 유물이 있는 강화는 흔히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린다. 고려박물관 건립으로 강화는 그 명성에 또 하나의 굵직한 획을 긋게 됐다.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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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화에는 왕릉 2기(홍릉, 석릉)와 왕비릉 2기(곤릉, 가릉), 궁지(宮址), 외성과 중성, 산성 등의 성(城), 팔만대장경 판각지인 선원사지, 삼별초 항쟁지 등 그 때의 흔적들이 여럿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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